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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28 01:15
필경사에 관하여
 글쓴이 : 이동진
조회 : 4,282  
신나는 문학기행 <13> 이근배 시인과 당진·예산 나들이

심훈 '상록수'·추사 '세한도'처럼…문학은 한겨울에도 푸르다
국제신문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2012-02-21 19:23
이근배 시인이 지난 19일 충남 당진 필경사 앞에서 심훈 선생의 문학세계를 문학기행에 참가한 부경대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유리창을 달아 햇볕이 잘 드는 게 이 집의 특징이다.
- 충남 당진 '필경사' 심훈 선생 직접 설계…이곳에서 '상록수' 등 상당수 작품 완성
- 이근배 시인 "누구나 경험한 내용 자신만의 언어로 압축한게 좋은 시"

- 市 승격한 고향 당진 시청에 시비 새겨져
- 인근 추사 김정희 기념관 내 '세한도'…권력·돈 영합 않는 문학정신 담긴 듯

글로 먹고 살거나 문학도를 꿈꾸는 사람이 글이 안 써질 때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충남 당진에 있는 '필경사(筆耕舍)'다.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시와 소설의 최고봉을 이룬 심훈(1901~1936년) 선생이 집필 활동을 한 곳이다. 심훈은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직녀성'의 원고료를 받아 이 집을 직접 설계했으며 이곳에서 1935년 장편소설 '상록수'를 52일 만에 탈고했다. 이곳을 찾으면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가 떠올라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필경사와 붙어 있는 상록수문화관에 전시 중인 심훈의 조그만 책상을 보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 같다.


'제13회 신나는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지난 19일 충남 당진으로 이근배 시인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을 떠났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홍윤표 시인이 동행했다.

■"시는 우리 인생 이야기"

이근배 시인은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문학청년의 기품을 풍겼다. 이 시인은 "아직까지 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시는 우리 모두가 경험한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 이야기"라며 자신의 시 '살다가 보면'과 '겨울행'을 큰 소리로 암송했다.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살다가 보면' 전문


이 시인은 좋은 시의 예로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와 허영자 시인의 '감'을 들었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다 아는 내용을 자신만의 시세계와 언어로 남들과 다르게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좋은 시입니다. 길고 어렵게 쓸 필요가 없어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

'이 맑은 가을 해살 속에선/누구도 어쩔 수 없다/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젊은 날/떫고 비리던 내 피도/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허영자 '감' 전문)

이 시인의 선창에 참가자들은 안도현과 허영자의 시를 큰 소리로 따라 읽었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시가 다가왔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구초심'


당진시청 광장에 세워진 이근배 시비.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았던 굴 쪽으로 향하는 것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首丘初心·수구초심)은 인지상정이다. 이 시인의 고향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고향은 내 시의 원천입니다." 이 시인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삼월리(三月里)' '서해안' '필경' 같은 시로 승화시켰다.

그의 대표작 '겨울행'에는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어머니./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나는 고향엘 가고 싶습니다/(…)/연기 속에 눈 못 뜨고 때시던/생솔의, 타는 불꽃의, 저녁나절의/모습이 자꾸 떠올려지는/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나는 자꾸 취해서 비틀거립니다'.

올해 1월 1일 군에서 시로 승격한 당진시청 신청사 광장에는 이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이 시인이 당진시 승격을 기념해 쓴 '새 당진이 솟아오른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문학기행 참가자를 맞은 이철환 당진시장은 "이근배 시인은 당진이 낳은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라고 자랑했다. 이 시장은 참가자에게 해풍을 맞고 자란 지역특산품 '해나루쌀' 4㎏씩을 선물했다.

■'세한도' '상록수'같은 문학정신을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인근 예산시 추사 김정희(1786~1856년) 기념관과 고택을 찾았다. 기념관 벽면에 새겨진 '세한도(歲寒圖)'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참가자를 반기는듯 했다.

세한도는 1844년 추사가 59세에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제자 이상적이 청나라 연경(현재 베이징)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데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해 그린 그림이다. 국보 180호로 지정돼 있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세한연후 지송백지 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 後彫也), 즉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고 푸름을 알 수 있다는 의미가 살을 에는 바람과 함께 참가자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문학도 권력과 돈,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세한송백' 같은 것이 아닐까. 추사 고택 주위에는 추사가 25세 때 부친을 따라 청나라 연경에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씨를 심어 자란 10m 높이의 천연기념물 106호 백송이 자태를 뽐냈다.

이 시인은 추사체가 탄생하기까지 선생의 피나는 노력과 열정을 소개했다. "추사 선생은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1000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 정도의 노력파입니다. 팔뚝 밑에 309개의 옛 비문 글씨가 들어 있지 않으면 서체가 하루 아침에 나오지 않고, 사자는 코끼리와 마찬가지로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라는 말씀을 남겨셨죠."

이와 함께 참가자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1822~1846)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당진 솔뫼성지를 방문해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 많은 이들을 기억했다.

이번 문학기행은 참가자들에게 한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한 '상록수'와 '세한도'처럼 문학청년의 정신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 이근배 시인은

- 김동리·서정주·박목월의 제자 … 신춘문예 6관왕


상록수문화관 앞 심훈 부조 옆에 선 이근배 시인.
이근배 시인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선생에게서 강의를 받았다.

1961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196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및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19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에 당선되는 등 신춘문예 6관왕의 대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장과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계간 '문학의 문학' 주간이다.

저서로는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한강'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시조집 '달은 해를 물고'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기행문 '시가 있는 국토 기행' 등이 있다.

가람문학상, 육당문학상, 고산문학상, 만해대상(문학부문) 등을 수상했다.

이상옥 창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이근배 시세계의 두 축은 연가류로 나타난 인간 사랑과 조국의 역사와 현실에 남다른 사랑"이라고 평가했다.